Northern Vietnam and South-West China, # 23
하노이, 하롱베이, 사빠, 윈난성, 쓰촨성, 충칭 25 Jul. ~ 26 Aug. 2004

 

 

<> 왜 모두들 충칭을 싫어할까?
[] 2004년 8월 19일 목요일, 청뚜 비, 충칭 맑음, 청뚜=> 충칭(重慶)

 

 

6:30 am, 어휴 추워! 에어컨 코드 뽑고 잘 걸...
7:30 am, 팬더를 보러 출발한다. 돌아오는 길에 북부 터미널에 내려 바로 충칭 가는 버스를 타려고 했더니만, 충칭행 버스는 동부터미널에서 출발한단다. 일단 충칭에 가져갈 짐만 챙기고 나머지는 샘스 게스트하우스에 맡긴다. 버스가 다 찰 정도로 팬더를 보러 가는 사람들이 많다. 출근 시간인 청뚜는 자전거의 물결이다.


8:00 am, 팬더 보호 및 연구소에 입장한다. 보니까 입장료가 30원이다. 그러면 왕복 차비가 40원이라는 말인데... 들어가서는 알아서 보니까 가이드도 별 필요도 없고... 사실 운전사 겸 가이드로 온 친구는 영어도 잘 못한다. 두 명이면 택시를 타고 오는 것이 경제적일 것 같다. 돌아갈 때 시간을 맞추지 않아도 되고...


연구소는 공원 형식으로 꾸며져 있고 팬더들이 몇 군데 나눠져 있다. 8시 30분에서 9시 사이가 팬더의 식사 시간이다. 대나무를 주면 정신 차리지 못하고 먹는다. 너구리 닮은 다른 이름의 팬더도 있다. 사진 좀 찍으려니 마침 비가 온다. 하지만 비에 아랑곳 하지 않고 모두들 사진 찍거나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다. 9시가 넘으니까 팬더들이 모두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9시 넘어서 도착하는 사람들도 꽤 있는데 정말 허망할 것 같다.


서양 여행객도 많지만 중국인 단체 여행객들도 많다. 자세히 보니 핵심은 중국인 단체 여행객들을 따라 움직이면 가장 알차게 구경할 수 있을 것 같다.


9:30 am, 박물관에 들려 팬더의 생활과 번식에 대한 비디오를 본다. 워낙 민감한 놈들이라 작업이 잘 되지 않아 인공수정으로 겨우 명맥을 이어가나 보다. 박물관엔 팬더 족보가 쫙 쓰여져 있다.

 


10:30 am, 다시 숙소를 향해 연구소를 출발한다.

11:10 am, 숙소에 도착한 후 길 건너편에 있는 밥집에 가서 아점을 먹는다. 반찬을 네 가지 골라 밥위에 얹어 먹는데 4.5위엔이다.


12:00 pm, 동부터미널을 향해 시내버스를 탄다. 4, 58, 81번 버스의 종점이라 마오쩌둥 동상 앞에서 아무거나 타면 된단다. 조금 기다렸다가 4번 2층 버스를 타고 가장 앞자리에 앉는다. 비가 와서 사진 찍기는 별로다.


12:30 pm, 터미널에 도착하니 삐끼들이 달려든다. 다 물리치고 그냥 매표소에 가서 표를 끊는다(111위엔).


13:00 pm, 버스가 출발한다. 버스 자체는 아주 좋은데 안에 의자를 너무 많이 설치하여 자리가 무지하게 비좁다. 거기다가 만석이라 꼼짝달싹 할 수가 없다. 에고! 무릎이야! 청뚜 주변의 평원과는 달리 산도 보이고 들도 보이고 한다. 도로 곳곳에 공사 구간이 많아 생각보다 그렇게 빨리 달리지는 못한다. 화물차들이 왜 이렇게 많지?


17:30 pm, 버스 터미널에 도착한다. 시내에 들어와서 30분이나 소요되는데 처음엔 잘못해서 축구장이 있는 외곽 지대 하차장에 내릴 뻔 했다. 넓은 평지에 들어선 청뚜 보다는 뭔가 조금 더 오밀조밀 모여있는 듯한 느낌이 터미널부터 든다.

 


18:00 pm, 터미널 북쪽에 있는 계단을 헉헉거리며 오르니 완전히 번화한 시가지가 자리잡고 있다. 405번 버스를 타고 시내 중심에 있는 해방비(解放碑)로 간다. 주롱루에 들어서는 순간 제대로 왔다는 생각이 든다. 시계탑을 겸하고 있는 해방비와 만나는 주롱루, 민주루, 민권루는 차가 다니지 않는 도보 전용로이며 마치 명동에 와 있듯이 고층 건물들이 거리 양쪽을 메우고 있다.


더운 날씨와 비싼 숙박비 때문에 충칭은 많은 여행객들이 피하고 싶어 하는 도시이다. 충칭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장강을 따라 우한까지 내려가는 유람선을 타기 위해 온다. 나의 경우 만약 돌아오는 항공편이 계획대로 우한이었다면 분명히 장강삼협을 따라 충칭에서 우한까지 유람선을 탔을 것이다. 그렇지도 않은 상황에서 충칭을 찾은 이유는 먼저 이전에 TV에서 충칭의 케블카를 보고 나는 그 케블카가 한 번 타보고 싶었다. 그리고 석불로 유명한 따주를 청뚜에서는 당이로 다녀오기에 빠듯하지만 아침에 일찍 충칭에서 출발하면 따주를 구경하고 저녁에 청뚜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18:30 pm, 책에서 경고했듯이 숙소 때문에 무지 고민했다. 유일하게 도미토리가 있는 후이씨안루 빈관에 자리가 없으면 그 다음 급은 적어도 200위엔은 내야하기 때문이다. 해방비에서 3분을 걷자 민주루 큰 길가에 별 두 개짜리 후이씨안루 빈관이 자리 잡고 있다. 아주 깨끗한 호텔이다. 리셉션에 있는 아가씨들이 영어도 잘한다. 숙박비는 50위엔이고 아침 식사가 포함되어 있다. 방에 가니 침대 여섯 개 중 두 개에만 사람이 있다. 에어컨까지 되고... 그리고 해방비가 방에서 보인다. 이번 여행 중 중국에서 묵은 숙소 중 가장 안락한 곳이다. 내일 방 예약하지 않고 왔으면 그냥 며칠 묵고 싶은...

 


19:00 pm, 충칭에는 케블카가 두 군데 있다. 하나는 북쪽의 지앙링 강 위를 가로 지르고, 다른 하나는 남쪽의 양쯔 강을 가로 지른다. 숙소에서 가까운 지아링 강의 케블카로 간다. 에전에 티브이에서 본 것과는 달리 케블카는 무지 썰렁하다. 강변에 도로가 건설되어 이제 현지인들은 케블카를 이용하지 않나 보다. 몇 명의 중국인 여행객들만 케블카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멀리 해가 멋지게 지는 모습이 보인다. 케블카는 편도 1.5위엔이다. 건너가서 야경을 찍고 다시 돌아온다.


현재 충칭시의 인구는 3천만 명이고, 시역에만 6백 만명이 산다고 한다. 땅이 한정되어 있어서 그런지 다른 도시에서는 보기 힘들게 고층건물들이 바싹 붙어서 하늘로 솟아 있다. 원래 충칭은 쓰촨 성에 속해 있었으나 쓰촨 성 인구가 1억이 넘게 되자 충칭과 그 주변이 충칭시로 쓰촨에서 떨어져 나왔다. 얼마 전 덩샤오핑 평전을 읽다보니 덩샤오핑이 중학교를 충칭에서 다녔으며, 여기서 배를 타고 파리로 유학을 갔다. 장개석의 국민당 정부도 1938년부터 1945년 사이에 충칭을 수도로 삼았다고 한다.


20:00 pm, 돌아오다 까르푸에 들려 이것저것 구경하다가 차를 넣어서 다닐 수 있는 보온병을 하나 구입한다.


22:30 pm, 백화점에 들어가 가방을 하나 사고 거리를 마구 쏘다니다 보니 끼니를 놓쳐 버렸다. 괜찮은 곳은 다 벌써 문을 닫았다. 서민들이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분식점 스타일의 식당을 찾아보나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워낙 땅값이 높은 시내 중심가여서 그런가? 에이, 할 수 없다. 호텔 옆에 있는 KFC에서 저녁을 먹는다.


왜 다른 배낭족들은 충칭을 미워할까? 나에겐 딱 체질인데, 그리고 숙소도 무지하게 마음에 들고, 그렇게 더운 것 같지도 않고, 현대적이고 첨단적인 모습에 뒤섞여 막대기 하나에 의지하여 생활을 꾸려가는 짐꾼들이 공존하는 곳... 그리고 저녁에 웃통 벗고 시내 중심가를 산책하는 아저씨들이 있는 곳...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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