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Pompeii)

 

 

로마에서 기차를 타고 남쪽으로 2시간 정도가면 나폴리에 다다르게 됩니다. 다시 거기서 로컬기차를 타고 40분 정도가면 폼페이 유적지에 도착합니다. 어릴 적 영화 '폼페이 최후의 날'의 마지막 장면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주인공들은 바다로 뛰어들어 용암으로부터 탈출합니다. 그런데 의외로  1997년 여름에 방문한 폼페이 유적지는 내륙에 있었습니다.  나폴리는 정말 소피아로렌이 출연한 영화에서 보던 그런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나폴리와 폼페이 중간에 AD79년에 폼페이와 함께 묻힌 헤라쿨레리움이라는 유적지가 있습니다. 그곳 기차역에서 합승택시를 이용하여 베수비우스 화산 정상에도 다녀왔습니다.

아쉬운 것은 폼페이와 헤르쿨라레움에서 발굴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는 나폴리에 소재한 국립고고학 박물관에 들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카프리를 그냥 휴양지로만 알고 가보지 않았는데 로마인 이야기를 읽으니 티베리우스 황제가 오랫동안 머물면서 정치를 했던 곳이더군요.  로마에서 당일로 다녀오기 좋은 곳들입니다. 하지만 일찍 서두른다 해도 카프리 섬과 내륙의 유적지 중 한 곳만 구경할 수밖에 없을겁니다.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1996년 여름에는 헤라쿨라레움과 베수비우스, 1997년 여름에는 폼페이를 구경한 것 같습니다.

폼페이 유적지 공식홈페이지(영문)

베수비우스 화산과 폼페이(영문)
폼페이 유적지 역사(네이버 백과사전)
추천도서 - 폼페이 최후의 날(시공디스커버리 총서) 

 

 

 

폼페이 유적지 입구입니다. 여름철에 정말 읔 소리 나도록 덥습니다. 물을 충분히 준비하고 모자도 꼭 챙기는 것이 좋습니다. 표를 구입한 후 구경하다가 식사하러 밖으러 나올 수 있습니다. 아무튼 더워 지기 전에 구경하는 것이 좋습니다.
  

 

 

 

뒤쪽에 보이는 화산이 베수비우스 화산입니다. AD79년 8월 24일에 폭발하여 폼페이를 완전히 덮어 버렸습니다.

 

 

 

헤라쿨라레움입니다. 에르꼴라노(Ercolano)라는 역에서 내립니다. 기차역에서 베수비우스 화산으로 가는 버스가 하루에 몇 차례 있다는데 저는 합승택시를 이용했습니다. 이탈리아인 연인, 프랑스 부부, 그리고 저 이렇게 다섯 명이 탔던 것 같습니다. 헤라쿨라레움은 비록 AD79년에 묻혔지만 사람들이 미리 대피했기 때문에 폼페이처럼 큰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헤라클레스가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어 이름이 헤라쿠라레움인데, 유적지 자체로만은 폼페이와 비교하면 조금 본전 생각이 납니다. 나폴리로 돌아올 때는 트롤리 버스를 탔던 것 같습니다.

 

 

 

베수비우스 화산에서 바라본 나폴리 만입니다. 반대에서보면 아래과 같이 보이답니다.


 

 

 

베수비우스 정상에서 폼페이 유적지를 바라 보았습니다. 초록으로 보이는 곳 중 어떤 곳이 폼페이 유적지인데 정확하게는 어디인지 모르겠네요. 아무튼 현재는 바다에서 꽤 떨어져서 내륙으로 들어와 있습니다. 추측하건데는 왼쪽 중간 지점에 있는 녹지가 유적지 인 것 같기도 하고요...

 

 

 

폼페이 유적지의 유물입니다. 79년 폭발 당시에 약 2만 명 정도가 살았다고 합니다.
조각품은 모조품일지도 모르겠네요. 겨울철에는 비가 꽤 많이 오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Villa dei Misteri에 남은 유물만 빼고 모두 나폴리의 국립박물관으로 옮겼다고 하지요?

 

 

 

2000년 전에 이렇게 해 놓고 살았다니 대단합니다.

 

 

 

상하수도 시설도 완벽했다고 하지요. 물통만 준비하면 현재도 쉽게 물을 마실 수 있습니다.

 

 

 

빵을 굽던  공장이라고 하네요. 앞에 보이는 것이 응회암으로 만든 맷돌이고 노예나 노새가 돌렸다고 합니다. 왼쪽에 보이는 붉은 벽돌이 빵을 굽던 화덕... 피자는 원래 중앙아시아의 음식이었는데 마르코폴로를 통해 이탈리아에 전해 졌다고 하니 이때는 피자는 먹지 않았을 겁니다. 나폴리 피자에는 위에 생선을 올려놓지요?

 

 

상수도 하나하나에도 공을 들인 흔적이 보입니다.

 

 

 

폼페이 유적지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2천년 전에 그려진 프레스코화입니다.  

 

 

 

집 안을 군데군데 정말 화려하게 꾸몄습니다. 자세히는 보이지 않지만 그린 것이 아니라 타일로 만든 것인 것 같습니다.
  

 

 

 

프레스코화의 유형이 여러 가지인데 이 그림은 신에 대해서 그린 것 같습니다. 정말 그 시대에는 옷을 저렇게 입고 다녔나 봅니다.

 

 

 

이것도 신에 대해서 그린 그림인 것 같은데... 벗고 다니기를 좋아했나 보네요.

 

 

 

색채가 아주 화려합니다. 폼페이 복원에는 1924년부터 1961년까지 37년 일한 고고학자 아메데오 마이우리의 역할이 컸다고 합니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인 1943년 9월에 폼페이가 심각할 정도로 폭격을 받았는데 아이러니컬 하게도 그 바람에 땅 밑에 있다고 모습을 들어낸 유적들도 많다고 합니다.

 

 

 

그림도 귀중하겠지만 액자에 해당하는 부조도 상당히 가치가 있겠죠? 어느 정도 부를 축적하고 살았기에 이런 것들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요?

 

 

 

폼페이 유적지를 아주 유명하게 만든 그림입니다. 한국에서 폼페이 유물전을 할 때 저는 가보지 않았는데, 미성년자 입자불가 코너도 있었다고 하더군요. 아마 이런 그림들이 주를 이루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침대가 조금 부실해 보입니다.

 

 

 

시가지를 벗어나 동쪽으로 조금 가면 원형경기장이 있습니다. 원형경기장으로 가늘 길에 이렇게 꽃터널이 마련되어 있답니다.

 

 

 

2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원형경기장입니다. 피비린내 나는 검투사 시합이 여기서 행해졌다고 하네요. 다른 곳처럼 여름에는 아마 야외무대를 개설하여 공연을 하나봅니다.

 

 

 

원형경기장의 문을 통해 바라보면 바로 남쪽에 성당이 보입니다. 꽃이름이 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여름 가뭄에 견디기 위해 입이 뾰족한 나무들을 경엽수림이라고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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